서울을 떠올리면, 도심 중앙에 자리 잡은 광화문과 그 뒤를 지키고 있는 경복궁이 떠오릅니다. 현대의 높은 빌딩들 사이 자리 잡은 과거의 궁궐과 궁궐의 담벼락을 둘러싼 무성한 초록을 지닌 나무들, 그리고 그곳을 거닐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과 가족들을 보면, 어쩐지 편안하고 안락한 마음과 함께 과거를 품에 안은 현재의 오묘한 모습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서울과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자란 저는,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서울에 여행을 갔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자란 동네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친구가 살던 12층짜리 아파트였는데, 서울은 그보다 훨씬 높은 건물들이 즐비했고, 너나 할 거 없이 멋진 양복을 차려입고 어딘가 바쁘게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만 가득했습니다. '서울은 놀이동산도 동물원도 없고, 아빠 같은 회사원들만 가득한 곳이구나~'하고 생각할 즈음에 아빠는 저를 광화문에 데려가 주셨습니다. 광화문은 정말 신기한 곳이었습니다. 수많은 빌딩 사이를 가로지르며 뻥 뚫린 길 위에 커다란 동상이 하나둘 서 있었고, 길을 따라 걸어가면 무시무시하게 커다랗고 기다란 성벽이 길을 막듯 서 있었습니다. 아빠는 이곳이 경복궁이며 서울의 중심이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경복궁 안에 들어가 한참을 돌아다니던 중 텅 빈 광장 속 덩그러니 자리 잡은 근정전에 다다랐습니다. 한적하고 고요한 주변과 달리 각양각색으로 칠해진 건물을 보고 어떤 압도감을 느꼈지만, 신기하게도 엄중한 겉모습과 달리 근정전의 문은 활짝 열려 사람들을 반기고 있었습니다. 그 안을 바라보니 사람이 두세 명은 누울 수 있을 듯한 커다란 의자가 있었고, 어린아이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문양이 벽과 가구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장에는 커다란 용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눈이 부리부리하고 무섭게 생긴 용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밤이 되면 자야 하니, 밤 12시가 되면 용이 궁궐을 빠져나와 경복궁과 광화문을 돌아다니며 지키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의 중심에서 낡고 오래되었지만 그렇기에 가치 있고 소중하며 바쁜 사회인들에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잠깐의 휴식을 주는 장소를 어린 시절 저의 시선과 함께 담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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